모든 사람이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저마다 영위하고 싶은 그들의 삶을 가지고 있다.
꿈이 무엇이냐는 아무 어른들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을 못했던 시절도
나의 인생에 목적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늘은 거창한 우리 인생의 목표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우주의 작은 미물일 뿐인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하루를 어떻게 개선하느냐를 말하고 싶다.
내가 오늘 보낸 하루와 다가올 내일을 위해 굳이 나 자신을 개선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누군가 개선하고자 한다면, 이 글을 보고 당신만의 느낌을 만들어가도 좋다.
최적화라는 단어가 제목에 있는데,
인공지능을 공부하다보니 미심쩍지만
우리가 사는 인생과 전기 신호로 이루어진 기계가 학습하는 방식이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어떤 인공지능은 정답을 올바르게 말하기 위해
오답을 겪어보고 오차와 정답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자신이 사고하는 생각의 가중치를 조금씩 조정한다.
또 어떤 인공지능은 특별한 목적은 없지만,
게임에서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장애물을 피하는 방법을 학습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들보다 조금 더 많은 목표와 꿈
싫어하는 것, 가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행동한다.
하루에도 수 많은 순간들을 스치면서
고리타분한 일상을 보내기도 하고,
다시 겪어보지 못할 짜릿한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무슨 이유는 없겠지만, 재미있는 순간들을 마주치고 싶어한다.
후회도 많이 남는다.
수 많은 언어들 사이에 섞여 나오는 말실수와
생산적이지 않은 일들을 하기도 하고,
목적은 없었기에 그저 아까운 하루를 보내버리기도 한다.
인생을 멀리 보는 특별한 방법 같은 것도 좋지만,
내일 하루를 잘 살아내보기 위해 결연을 다지는 시간도 좋다.
최적화는 단숨에 꿈 같은 것을 이루는 방법이 아니다.
조금씩 나만의 속도를 지켜나가며 개선해보는 것이다.
다만 나아가는 방향은 중요하다.
그 방향은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발전시키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다.
나는 이에 대해 3단계 방법으로 생각해보았다.
1. 내가 오늘 했던 일, 하나를 샘플링한다.
2. 그 일을 내일도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예/아니오로 답한다.
3. 나는 그 일을 하면서 행복했는지 예/아니오로 답한다.
오늘 내 하루를 말해보겠다.
1. 오늘 나는 기타 연습을 1시간 정도했다.
2. 이 일은 내일도 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3. 나는 그 일을 하면서 행복했다.
-> 나는 내일 기타를 치고 오늘 같은 생각을 똑같이 해볼 것이다.
1. 오늘 나는 sns를 지나치게 봤다.
2. 이 일은 내일도 할 가치가 없다.
3. 나는 그 일을 하면서 행복했다.
-> 나는 내일 sns를 똑같이 하겠지만,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으니, 많이 하지 않을 것이다.
2번 문항에서는 오늘 내가 한 일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 일을 수행한 주체인 내 자신이 [행복]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내가 오늘 내린 결론은 좋은 방향을 가지고 있지만, 단숨에 나를 완벽한 상태로 끌고가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가치와 행복을 높이면서 살아가는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다.
어느 곳에 더 가중치를 두며 살아갈 지는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오늘의 나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인가?
기꺼이 내일 하루를 바꿔볼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물어볼 수 있는 끈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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