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는 윌리엄 골딩의 책이다.
단순히 계급 사회를 향한 날이 선 풍자인 줄 안 채로 읽기를 결심했다.
이 책은 지극히 현실적이기에 이상을 노래하고 있지도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책 소개를 위한 에세이도 아닌,
신분 제도의 대대적인 철폐로 껍데기만 남은 자유국가의 참상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다.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에서
병적 관음과 시기와 박해로 절여진 각 계층의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책은 세 가지 대목으로 이루어져있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아들 올리버와 하류층 군인의 딸 이비의 무언가 잘못된 사랑,
상류층의 이모젠과 그의 남편이 올리버 계층에게 선사하는 비극적 격차와 위선적 계급 의식
웨일스에서 건너온 보잘 것 없는 헨리 윌리엄스와 부유한 집안의 딸 돌리시 부인 사이에서 오가는 불쾌하고 피폐한 사랑,
이 모든 것을 방관하며 그들을 희화화의 대상으로 만드는 스틸본의 주민들.
각 대목에 대해서 작가가 연출하고자 했던 의도 역시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위 계급과의 보이지 않는 선을 무참히 그어버리는 인간
상위 계급과의 보이지 않는 벽에 절망하는 인간
각자의 계급에서 기꺼이 창문 틈을 향해 타인을 조롱할 수 있는 비열한 인간
이 모든 것은 마치 우리 일상의 드러나지 않는 비극을 거울로 비추는 듯 하다.
지금부터는 각 파트의 핵심적인 사건을 위주로 작가가 의도한 세 가지의 추악한 모습을 파고 들어가보자.
올리버의 엇나간 성적 욕망
올리버는 상류층 여성 이모젠을 좋아했다. 다만 그녀는 올리버의 동경을 무참히 짓밟듯 같은 계층의 남성과 약혼하였다.
그러다 허름한 집들 사이에서 마주쳐왔던 이비라는 소녀에게 성적인 매력을 강하게 느낀다.
이비는 올리버보다 상류계급 가정의 아들인 로버트를 좋아했으나, 올리버의 강한 욕정을 저지하지 못했다.
올리버는 새파란 나이에 이비에게 잘못된 사랑을 범하게 된다.(이비는 이를 강간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느낀 충동적인 쾌락은 마을 사람들의 간음의 대상이었던 이비를 정복했음과,
이비의 마음이 향한 로버트의 계급에 대한 도전이었다.
한 번의 실수로, 이비와 올리버 사이에 새로운 생명의 잉태가 찾아올 뻔 하였다.
올리버는 결코 이비의 영혼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음이 이 곳에서 드러난다.
하층민인 이비의 몸을 가졌음에도 이비의 임신을 혐오했던 것,
그런 여인과 그들 계급을 도구화하며, 질병이자 성병 같은 존재로 인식했던 것,
임신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광인처럼 환호했던 모습이 내가 마주친 첫번째 참극이었다.
올리버가 계급과 사람을 바라보는 뒤틀린 가치관이 그저 인류의 작은 부분이 공유했던 잔재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꿈틀거리며 악한 마음을 대변하는 누구나의 마음 속에 존재함을 보여준다.
연극을 통해 보여준 계급의 차가운 위선
올리버는 유년 시절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를 즐겼다.
비록 예술가의 길이 숭고하다고 해도, 시민들에게 모자를 들이미는 운명임을 알고 있었다.
상류 계층으로 가는 사다리를 만들기 위해 올리버는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하여 공부한다.
한 학기를 마치고 스틸본으로 돌아온 그는 어머니의 강력한 억지로 마을에서 주최하는 오페라 공연에 출연하게 된다.
그 곳에는 올리버가 동경했던 상류층 여인 이모젠과 그의 남편,
해당 계급에 높은 벽을 느끼며 살아왔던 올리버와 그의 어머니,
사람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가진 극작가 디트레이시가 있었다.
극 중 배역을 정하는 일은 계급 사회에선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이모젠은 관중의 동경과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으며, 올리버는 아무 말도 없었다.
디트레이시는 올리버의 평생의 동경 대상이었던 그녀를 무지와 허영심으로 가득한 여인임을
올리버에게 깨닫게 해주었고, 올리버는 마치 계몽이라도 된 듯 해방이 된 기분이었다.
반면, 디트레이시 역시 동성애라는 남다른 사랑을 관철하는 자였는데,
이러한 사실을 올리버에게 고백하고, 조롱이 섞인 웃음을 그에게서 마주하자, 공허와 허탈감을 느낀다.
무대와 그 밖에서 오고가는 수 많은 고백과 조롱이 마치 입은 연 채로 귀를 닫고 사는 흔한 우리 인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관음과 방치가 만연한 비극적 축제
헨리 윌리엄스는 부유한 가정집의 딸 돌리시 부인을 이용하여 부자가 되고자 하였다.
작 중 헨리는 "대어를 낚는다"는 표현을 통해 그의 결연하고도 불쾌한 의지가 돋보였다.
그런 사악한 속셈을 알고서도 돌리시 부인을 외면하면서도 창문 틈으로
그녀의 몰락을 훔쳐보는 마을 사람들의 축제가 비극적이기 짝이 없었다.
결국 헨리와 돌리시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돌리시는 정신병이 걸리게 되었고
그의 관심을 받고자 범죄까지 저지르는 상황에 갔음에도,
그 아무개에게는 못 고쳐다 쓰는 정신병자로 조망될 뿐이었다. 결국 그녀는 죽게된다.
올리버의 음악 선생이기도 했던 돌리시 부인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가기까지 방관하기도 했던 올리버에게도 죽임을 당한 셈이었다.
피라미드를 나갈 것인가
결말에 다다랐을 땐 헨리와 올리버가 돌리시 부인의 무덤 앞에서 불편한 침묵을 지키는 장면이 연출된다.
헨리는 피라미드의 가장 밑에서 상류층으로 올라간 사례가 되었고,
올리버는 명문대에 입학하여 피라미드를 또 한 번 오르려 하고있다.
이비는 런던의 창녀가 되었을 것이고, 돌리시 부인은 진짜 사랑을 심연에서 좇다 목숨을 잃었다.
이 피라미드는 굉장히 불쾌한 구조를 하고 있다.
관계 속에서 진짜 사랑을 찾고자 했던 인간은 무언가의 결함을 가졌으며,
피라미드 안에서 악한 방법의 수단을 동원했던 인간은 무언가의 큰 보상을 얻는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을 선하게 살아가는 방법 따위가 아니다.
작 중 누구도 권선징악의 이름으로 벌을 받지도 않았으며, 판타지적인 교화도 없다.
애초에 올리버와 헨리 윌리엄스가 악으로 규정되지도 않았다.
상류와 하류의 대립을 보여주지만, 이는 곧 자신의 하위 계급과의 대립을 보여주면서
절대 선과 악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인류가 예로부터 만들어 온 무형적 계급과 각자 인물 안에 내재되어있는 자신만의 피라미드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 곳 그리고 현실에서 이러한 피라미드를 부시겠다는 행위는 꽤나 도전적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다만 올리버는 소설 가장 말미에 그가 만든 피라미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그의 고향 스틸본을 탈출하는 행위로 넌지시 암시했다.
역시나 답은 없다. 다만 우리는 행동할 수 있다.
우리도 피라미드에서 살고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이성적으론 자각하지 못한다고해도, 본능적으로는 계급화를 하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을 것이다.
비교를 통한 계급화, 강등과 상승 그 곳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시기와 사회적인 살해들이 존재한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변치 않는다.
작가는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제시했다.
답은 어디에 있는가?
그 전에 위선으로 똘똘 뭉쳐 벗겨지지도 않는 인간의 본성들이
이 피라미드를 모조리 와해시킬 수 있을까?
나는 다소 냉소적인 입장이다.
다만 작은 소망은 자신이 지은 피라미드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돌아봤으면 한다.
그리고 만약 그 피라미드에서 감당하기 조차 어려운 괴물이 살고 있다면,
한 번쯤 그 괴물에게 반격의 칼을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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