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어린 아이는 이미 그 안에 노인이 있고,갓 태어난 모든 아기는 이미 그 안에 죽음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죽어가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어.우리의 삶은 죽어있으면서도, 활기를 띄고있다.돌은 흙이었으며 식물이고 동물이 될 수 있다.돌은 돌이고, 강은 강이 아니다.우리는 보여지는 것 그 자체가 가지는 모습을 사랑하고 숭배해야 한다.이것이 내가 찾은 이 책의 전부다.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라는 바라문의 어린 아이의 일생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하며, 사랑이란 무엇이고, 인간은 어떻게 죽어가는가. 모든 것이 윤회인 이 세상엔 고통이 동시에 기쁨이 되는 일체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싯다르타는 인도 바라문의 자손이었다. 싯다르타는 신성했고 모든 이들에게 ..
이 세상안엔 수 많은 진실과 거짓이 의도적으로 꾸며진 탈을 쓰고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이제는 정보를 소비하는 수신인의 책임이 된 것 같다. 모든 정보의 근원은 관찰되는 모든 것의 현상들이다. 누군가에 의해 관찰된 현상들은 전달의 가치를 지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가치 판단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한 현상들은 정보가 되어 매개체를 통해 수용자에게 전달되는데, 수신되는 정보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얼만큼의 변조가 일어났는지는 알 턱이 없다. 가장 오래된 성서조차 관찰된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을텐데,세대를 거듭하여 전승되는 과정에서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는정보는 과연 진실일 지 명확하게 증명할 수도, 믿을 수도 없다. 우리는 오염되지 않은 진실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20여 년간 신을 믿었다.그리고 운명은 신의 뜻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이 될 때는 보통 되던 일도 나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였다. 나를 비롯한 이 세계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선고되는 운명이라는 것들이신으로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약한 확신이다. 우리는 보통 운명을 받아들인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운명이라고 정의하는 불가항력 너머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찰하지 못하는 진실에 대해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처지에 놓여있다. 이러한 모종의 비참함에 휩싸여 본 사람은 운명에 저항해보려했던 사람일 것이다.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에 이로움을 주기도한다.더 정확히 말하면, 운명을 받아들임..
기적적인 생명으로 태어나곧장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는 길에는가시밭길로 가득한 것만 같습니다.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새어나오는 신음을 틀어막는 일은나를 외로운 심연으로 빠트립니다.눈 앞은 너무나 캄캄하고나는 이 고난을 견딜수가 없어서한 걸음 내딛기 두려워 주저하고만 있습니다.나는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습니다.바람이 새들어오는 헤진 옷과자성을 잃어버린 나침반뿐입니다.어디로 가면될까요.그 곳에선 어떤 괴물을 마주칠까요.미천한 목숨은 어디까지 늘어나려나요.참으로 미물입니다.볼 거리가 없는 나의 삶은.나는 한 여름의 아지랑이이고,사막의 신기루입니다.곧 사라질거란 생각에 잠시 숙연해집니다.
모든 사람이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저마다 영위하고 싶은 그들의 삶을 가지고 있다. 꿈이 무엇이냐는 아무 어른들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을 못했던 시절도나의 인생에 목적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늘은 거창한 우리 인생의 목표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우주의 작은 미물일 뿐인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하루를 어떻게 개선하느냐를 말하고 싶다. 내가 오늘 보낸 하루와 다가올 내일을 위해 굳이 나 자신을 개선하지 않아도 된다.그러나 누군가 개선하고자 한다면, 이 글을 보고 당신만의 느낌을 만들어가도 좋다. 최적화라는 단어가 제목에 있는데, 인공지능을 공부하다보니 미심쩍지만우리가 사는 인생과 전기 신호로 이루어진 기계가 학습하는 방식이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어떤 인공지능은 정답을 올바르게..
꿈을 꾸는 사람의 가슴은 타오르는 성화와 같다. 영원토록 간직하고자 했던 그 때의 작열감은 어느새 적당히 따뜻한 온기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모두 타오를 의무는 없지만, 기꺼이 하고자 한다면 산을 태워버릴 불이 될 수 있다. 꿈을 꾼다는 것은 프로메테우스에게 불을 받은 것이다. 그 불이 작은 종이 조각을 태우며 연소할 지, 광야를 비춰줄 거대한 불기둥이 될 지는 그 불을 가진 사람에게만 달려있다. 가끔 내가 땔감도 안되는 종이 조각으로 타들어가 없어질 불을 인위적으로 살리고 있지 않은지 생각한다. 유년에는 공을 차며 순수한 꿈을 꾸었고, 펜을 잡으며 원하지 않은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열정이 가리키는 이정표를 비틀어가면서 나 조차도 속인 꿈을 꿨던 적이 있다. 어쩌면 지금의 나도 특별한 개별성을 가지지 ..
는 윌리엄 골딩의 책이다.단순히 계급 사회를 향한 날이 선 풍자인 줄 안 채로 읽기를 결심했다.이 책은 지극히 현실적이기에 이상을 노래하고 있지도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책 소개를 위한 에세이도 아닌,신분 제도의 대대적인 철폐로 껍데기만 남은 자유국가의 참상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다.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에서 병적 관음과 시기와 박해로 절여진 각 계층의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책은 세 가지 대목으로 이루어져있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아들 올리버와 하류층 군인의 딸 이비의 무언가 잘못된 사랑,상류층의 이모젠과 그의 남편이 올리버 계층에게 선사하는 비극적 격차와 위선적 계급 의식웨일스에서 건너온 보잘 것 없는 헨리 윌리엄스와 부유한 집안의 딸 돌리시 부인 사이에서 오가는 불쾌하..
나의 유년시절 ADHD는 생소한 장애이자,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정신과적 질병이었다.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든,주변의 환경이, 혹은 자신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든,우리가 사는 지금은 그런 생소한 장애들이 주변에 즐비해있다.심지어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2010년대 초 손에 거머 쥐었던 스마트폰이라는 것이인류에게는 너무 과분한 도구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 작은 단말기에서 흘러들어오는 정보의 흐름은내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너무 빠르고 크게 흘러들어온다. 10초 만에 넘어가는 작은 자극들이 모여 10시간의 도파민 중독자들을 만들어낸다.모두가 휘발적인 자극에 지배당하고 있는 세상이다. 미디어는 인간이 정보를 습득하기에 편하도록 발전되고 있다. 동굴 벽에 돌을 찍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