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시절 ADHD는 생소한 장애이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정신과적 질병이었다.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든,
주변의 환경이, 혹은 자신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든,
우리가 사는 지금은 그런 생소한 장애들이 주변에 즐비해있다.
심지어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2010년대 초 손에 거머 쥐었던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인류에게는 너무 과분한 도구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 작은 단말기에서 흘러들어오는 정보의 흐름은
내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너무 빠르고 크게 흘러들어온다.
10초 만에 넘어가는 작은 자극들이 모여
10시간의 도파민 중독자들을 만들어낸다.
모두가 휘발적인 자극에 지배당하고 있는 세상이다.
미디어는 인간이 정보를 습득하기에 편하도록 발전되고 있다.
동굴 벽에 돌을 찍어내며 그린 그림들은 해석하기도 난감하다.
파피루스에 문자를 새겨가며 내세의 안녕을 빈다거나,
금속 활자본에 조상들의 사상을 계승하고자 하였다.
2000페이지에 달하는 성경이라는 것을 만든 것도 마찬가지.
근현대에는 신문을 만들어 세간의 소식을 전했고,
TV를 만들어 시각과 청각을 매개로 정보를 전달했다.
TV는 작아지고 빨라지면서 10초 짜리 숏폼을 볼 수 있는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부터, 이해하기 쉬운 콘텐츠로
투박한 정보의 전달 방식에서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진화된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눈부셨지만, 인간의 진화는 음과 양이 존재하는 듯하다.
몰두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것이 당연해진 사람들,
무의미한 시간을 허비했다고 오늘도 생각했지만,
내일도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려고 계획하는 사람들.
마치 인류가 때를 기다리며 축적된 도파민을 모두 분출하려는 것만 같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자극이라는 방사능에 피폭된 것 같다.
한 번 피폭됐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해버린 것 같다.
나는 적어도 내 자신이 쾌락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수 만개의 자극을 견디며 살아가야하는 시대에서
내가 놓치고 있던 감각들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목표를 정하고 그 곳에 몰입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점점 사라져가겠지만,
내가 그들 중 한 명이 되지 않음을 바란다.
어떻게해야 위처럼 원대한 소망을 이룰 수 있을까?
첫번째는 목표 의식.
거창하고 복잡한 목표가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 바라는 작은 삶의 일부.
두번째는 욕망
그저 바라는 마음뿐이어도 괜찮으니, 날 그곳으로 이끌고 갔으면 하는 마음.
세번째는 믿음
내 주변의 자극들에 주눅들지 않고 내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
네번째는 1분 뒤에 시작할 수 있는 마음
내일 해야지가 아닌 지금 당장. 이 물 한 컵을 먹고 시작해볼 수 있는 내 마음가짐
마지막은 끈기
당장의 피드백이 돌아오지 않아도 묵묵하게 싸워 이길 수 있는 근성같은 것
앞으로는 스스로 핸드폰을 키지 않아도,
말 뿐만으로 원하는 수치만큼의 자극을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되겠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자신을 잘 지켜내보길,
수 많은 자극을 견디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식별하고
몰두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가짐을 가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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