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진격의 거인 마지막화를 정주행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삶 속에서 인간들은 "끝없이 늘어나기 위해" 살아간다고 한다.
자신의 생명을, 후손을, 어쩌면 세상을 늘어뜨리기 위한 본능인 것 같다
그런데 그저 늘어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살아간다는건 그렇게 죽는다는 것일 뿐"이라고 하면,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모두 죽기 때문이다.
이 명제는 완벽하게 우리의 인생을 표현하지만,
하나의 문구를 넣어보면 가슴이 뜨거워질 것이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이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이것은 명제가 되지 못한다.
삶 속에 던져진 것은 진실이며, 죽어가는 것 또한 진실이지만
무엇을 위해 살아간다는 당위는 진실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끝없이 늘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잠시 재밌는 상상을 해보자.
매일 밤, 주사위를 던져 1이 나오면
당신은 내일 죽는다.
공평한 죽음은 모두의 죽음을 무작위성에
맡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럼 당신은 내일 죽을 확률이
16.6%라면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또,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할 것 같은가?
이렇게 인위적이고 공평한 죽음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삶의 목적을 상실하게 만든다.
병원이 사라질 것이다.
사람을 살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돈도 사라질 것이다.
모아둘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문명이 사라질 것이다.
어차피 와해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야만적으로 변할 것이다.
단기적인 쾌락의 노예로 변할 것이다.
먼 미래의 내가 살아있을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이 사라질 것이다.
삶의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당신이 매일 16.6%의 확률로 죽을 수 있다면,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것 같은 죽음은
당신의 귀중한 삶의 목적을 무참히 빼앗아 간다.
인류가 끈질기게 생존했던 이유는
이 세상이 무작위적으로 죽음을
선사하는 공평한 세상이 아니며,
그들에겐 인생에 대한 나름의 이유와
늘어나기 위한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은 꼭 찾아오기 때문에 공평하지만
죽음을 언제 맞이할지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불공평하다
즉, 죽음이라는 것은 조건부로 불평등하다
이제 16.6%의 세계에서 나와
우리 현실 세계를 조망해보자.
당신은 노력하는 만큼 삶을 값지게 만들수도 있고,
원하는 만큼 삶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있는 삶의 동기는
그저 늘어날 뿐인 관성일 수도,
꼭 이루고자하는 목표일 수도,
탐욕적인 태도 그 자체일수도있다
완벽하게 공평한 세상이 아니더라도 좋다.
조건부로 불평등한 이 죽음을,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만으로
당신은 충분히 살아갈 이유를 가진다.
매일 주사위를 굴려서 죽음을 모면하는 삶보단
오늘 당신의 밤이 훨씬 더 안락하지 않은가
'Philosoph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 많은 자극을 견뎌가며 살아가는 사람들 (3) | 2024.04.28 |
---|---|
컨셉 수업 (0) | 2024.03.04 |
정답은 무책임 해지려는 욕구에서 기인한다 (1) | 2023.12.17 |
불평등은 죽음마저 불평등하게 만든다 (0) | 2023.10.17 |
죽음이 두려운 너와 내가 불평등을 만들 수 있는 한, 세상은 불평등하다. (0) | 2023.10.16 |